경북 영양군 보건의료원. 올해 초 이곳에 배치된 공중보건의는 단 1명이다. 3년 전만 해도 3명이었다. 간호사가 1차 문진을 맡고, 약사가 복약 상담까지 겸한다. 그래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농어촌 보건소 234곳의 민낯이다.

약업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공보의 급감에 대응해 '한시적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약사회는 '약사 역할 확대 전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지역 개원의사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의대 정원만 늘리면 뭐 하냐, 지역에서 개원하면 세제·재정 혜택을 달라." 모두 '사람을 어떻게 더 보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빠진 축이 하나 있다. 기술이다.

"대체가 아니라, 이미 현장입니다"

AI 의료 스타트업 루닛의 한 엔지니어에게 물었다. 지역 의료 붕괴와 AI, 접점이 있느냐고.

"접점이 아니라 이미 현장입니다. 루닛 인사이트 CXR은 흉부 X선 판독 보조 도구인데,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보건소에서 활용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어요. 핵심은 '대체'가 아니라 '보조'예요. 1차 스크리닝에서 이상 소견을 잡아주면, 공보의 1명이 짊어져야 할 판독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같은 흐름이 감지된다. 구글 헬스의 AMIE(Articulate Medical Intelligence Explorer)는 2024년 네이처 논문에서 1차 진료 수준의 진단 정확도를 입증했다. 2025년에는 FDA 승인을 받은 AI 진단 보조 도구가 30개를 넘었고, 한국 식약처 인허가를 받은 AI 의료기기도 250건을 돌파했다.

농어촌 보건소에서 AI 흉부 X선 판독 보조 시스템을 사용하는 의료진의 모습

원격진료, 왜 한국만 멈춰 서 있나

의료 정책 전문 연구자 A씨(서울대 보건대학원)는 다른 각도를 꺼냈다.

"한국은 원격진료를 둘러싼 이해관계 충돌이 너무 격렬해서, 기술 도입 자체가 정치화됐습니다. 일본은 2024년부터 벽지 의료에 원격진료를 제도화했고, 미국은 코로나 이후 텔레헬스 항구화 법안을 통과시켰어요. 한국은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죠."

그가 주목한 건 '맞춤형복지'라는 키워드와의 연결이었다.

"구글 트렌드에서 '맞춤형복지' 검색량이 오르고 있는데, 이건 국민이 획일적 복지가 아니라 자기 상황에 맞는 서비스를 원한다는 신호입니다. AI 기반 건강관리가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들 수 있어요. 만성질환 모니터링, 복약 알림, 생활습관 코칭. 의사를 만나기 전 단계에서 AI가 커버하는 영역이 넓어지면, 지역 의료의 물리적 한계를 기술로 우회할 수 있습니다."

의료계 반론, 근거는 충분한가

대한의사협회 측 관계자의 시각은 달랐다.

"AI 진단 보조가 보건소에 도입된다고 공보의 부족이 해결됩니까? 최종 판단은 의사가 해야 합니다. 처방도, 응급 상황 대응도 의사 몫이에요. AI는 보조 수단이지 의료 인력의 대체재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의사가 지역에 갈 유인을 만드는 게 먼저입니다."

메디게이트뉴스가 전한 지역 개원의사들의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세제 혜택, 재정 지원, 자녀 교육 인프라. 사람이 지역에 남으려면 사람을 위한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논리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숫자 하나가 이 논쟁의 균형을 흔든다. 2026년 공보의 배치 인원은 2019년 대비 43% 감소했다. 의대 정원을 지금 당장 늘려도, 그 인력이 현장에 도달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지역 의료 현장에 10년을 기다릴 여력은 없다.

공급만 늘릴 것인가, 수요를 줄일 것인가

판교에서 AI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한 VC 심사역의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의료 정책의 프레임이 '공급 사이드'에만 갇혀 있어요. 의사 수를 늘리자, 공보의를 더 보내자, 지역 수당을 올리자. 전부 인력 투입론입니다. 그런데 수요 사이드를 기술로 줄이는 발상은 왜 빠져 있을까요. 경증 환자의 1차 접점을 AI 챗봇이 맡고, 만성질환 관리를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AI 코칭이 커버하면, 의사 1명이 감당하는 환자 수가 줄어듭니다. 같은 인력으로 더 넓은 지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는 덧붙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헬스테크 키워드가 'care navigation'입니다. 환자가 어떤 의료 자원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AI가 안내하는 겁니다. 한국 농어촌에 적용하면, 보건소 한 곳이 반경 50km를 커버하는 구조도 가능해집니다."

세 번째 축을 꺼내야 할 때

정리하면 이렇다. 의대 정원 확대도 필요하고, 지역 의료 인센티브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사이에 기술이라는 세 번째 축이 빠져 있다. AI 진단 보조, 원격진료 제도화, AI 기반 맞춤형 건강관리. 이 세 가지가 인력 정책과 동시에 움직여야 지역 의료 붕괴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공보의 43% 감소라는 숫자 앞에서, "의사를 더 뽑자"만으로는 시간이 모자란다. 기술이 그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지, 최소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다.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기다.